영어 캠프, 꼭 원어민이 가르쳐야 하나요? 광양 사라실 예술촌의 기막힌 역발상
(문화뉴스 이동구 기자) 청소년이 ‘선생님’이 되고 원어민이 ‘학생’이 된 현장, K-컬처 체험에 영어 자신감은 덤으로 따라왔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영어 캠프’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머리 아픈 문법, 낯선 원어민 앞에서 억지로 쥐어짜 내는 자기소개, 그리고 “파인, 땡큐, 앤 유?”의 무한 반복. 재미보다는 숙제에 가깝고, 영어가 늘기보다는 영어와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여기, 광양의 한 예술촌에서 이 모든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부순 캠프가 열렸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재밌으면 다행이야!”. 이들은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아예 뒤집어 버렸다. 청소년들이 원어민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로 한 것이다. 뭘? 바로 우리가 사는 동네, ‘광양의 문화’를 말이다.
“쌤, 이건 쌍사자 석등이라는 건데요…”
이 기막힌 캠프의 방식은 이렇다. 일단 동네 청소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에 사는 원어민들에게 보낼 ‘초대장’을 직접 만든다. “우리 동네 진짜 재밌는데, 한번 놀러 오지 않을래요?”

“This is… 사자. Lion! Two lions!” "이건... 사자예요. 라이언! 사자 두 마리요!"
“Put the rice cake… then sausage… Yes, good!”" 떡을 꽂고요... 그다음에 소시지요... 네, 좋아요!"
교과서 영어가 아닌 ‘내 삶의 영어’를 만나다
결과는 놀라웠다. 캠프에 참여한 한 학생은 “영어가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광양을 설명하고 실생활 영어를 쓰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박제된 영어가 아니라, 내 삶과 연결된 영어를 쓰기 시작하자 ‘영어 울렁증’이 ‘영어 자신감’으로 바뀐 것이다.
원어민들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그들은 일방적인 ‘영어 선생님’ 역할에서 벗어나, 한국의 지역문화를 깊숙이 체험하는 ‘학생’이자 ‘손님’이 됐다. 광양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만든 화살과 소떡소떡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광양과의 특별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광양교육지원청 김여선 교육장이 말한 ‘글로컬(Glocal) 교육’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우리 지역(Local)의 고유한 콘텐츠를 가지고 세계(Global)와 소통하는 힘. 아이들은 이번 캠프를 통해 K-컬처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친구에게 알려주는 ‘소떡소떡 만드는 법’에서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이 캠프,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100명 넘는 신청자가 몰렸을 정도. 조주현 사라실 예술촌장은 “문화예술이 녹아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영어를 잘하는 법은 어쩌면 간단할지 모른다. 일단 재미있고, 내 이야기가 되면 된다. “재밌으면 다행이야!”라는 이름처럼, 재미와 자신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광양의 도전은 앞으로의 교육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문화뉴스(https://www.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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